top of page

[눈맛의 발견] 포스트단색화, 사유의 층(layered)을 명상하라!

최근 서세옥(1929~2020), 김창열(1929-2021) 같은 추상화의 거장들이 잇따라 타계하면서, 한국추상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일고 있다. 김환기, 윤형근, 이우환,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등 담백한 색감 위에 명상적 언어로 표출해낸 한국추상들엔 어느 순간 ‘단색화’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서구추상이 재현(再現)을 거부한 캔버스와의 파격적 대화라면, 한국추상은 작가의 개별인식 속에서 사유의 층(層)을 고민해온 실존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추상미술을 이해하는 열쇠는 어디 있을까. 다이내미즘과 하이브리드로 대표되는 21세기 속에서 구상이냐 추상이냐 혹은 격정이냐 표현이냐 식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무(無=형태없음)에서 창조하는 21세기 추상의 다면성은 잭슨 폴록의 드리핑(dripping:물감을 흩뿌리는 기법)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앵포르멜의 들끓는 격정과는 차이가 있다. 시대가 예술을 읽는 키워드가 되듯이, 이제 예술가로서의 들끓는 창작정신은 개별 캔버스 사이에서 각자의 사유 층을 남기며 개성화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1세대 단색화가(1930년대 태생)들이 역사와 전통의 원형을 탐색하면서 자연성을 바탕으로 삼았다면, 포스트 단색화가(1950년대 이후태생)들은 집합이나 운동보다 실존을 통한 개인양식을 진행 중이다. 포스트 단색화를 대표하는 김근태, 김춘수, 김택상, 장승택의 세계관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 《층(層)_고요하며 깊다》가 Art Project CO(기획 임은혜)에서 5월 27일부터 한 달 간 선보인다. 김근태 작가(1953~)는 돌의 질감을 캔버스에 옮기면서도 유화물감과 돌가루[石粉]를 특유의 방식으로 섞어 광목 캔버스에 수평으로 옮겨내는 작업을 한다. 작업방식과 과정 모두에 있어 매체와의 타협과 융합을 강조하여 무형상을 향한 다양한 층차에 질문을 던진다. 김춘수(1957~)의 ‘Ultra-Marin’은 자연의 온갖 빛을 머금은 깊고 푸른 역설을 담고 있다. 희고 푸른 에너지의 향연은 입을 뗄 수조차 없는 깊이 있는 침묵의 층을 표현한다. 김택상(1958~)은 캔버스의 미세한 흐름 속에서 빛·바람·시간을 머금는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자유롭고 다층적인 명상을 유도한다. 장승택(1959~)의 작품은 캔버스와 유리면 위에 여러번 내려그은 색의 깊이있는 층차를 창출한다. 부딪히면서도 스며드는 조응(照應)의 언어는 꼭 우리네 삶의 관계와 닮았다. 거장들의 이름만 귀에 익었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포스트단색화 작가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포스트단색화 작가? 사실 실존 걸고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개념은 언어일 뿐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직접 실견하는 것은 설명만으론 이해할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관람문의☎ 02-2088-7567) /안현정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출처 : 대한변협신문(http://news.koreanbar.or.kr)

留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