結_손의 기억: 순간과 영원의 경계에서
아트프로젝트 씨오는 2025년 2월, 한국 현대미술의 주목할 만한 세 작가 권오봉, 김춘수, 김호정을 초대해 ≪ 結_손의 기억 ≫ 전시를 개최한다. '結(결)'이라는 한자는 '맺다', '엮다'의 의미로, 작가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예술적 행위와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신체적 기억을 상징한다.
손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도구이자 예술 창작의 근원적 매개체이다. 붓을 쥐고, 흙을 빚고, 물감을 문지르는 손의 행위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표출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가 된다. 이번 전시는 권오봉, 김춘수, 김호정 세 작가의 손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행위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촉각적 기억에 주목한다.
권오봉의 작업은 신체의 즉흥적 움직임과 도구의 물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나무, 갈퀴, 못, 주걱 등 일상의 도구들은 작가의 손에서 예술적 매개체로 변모한다. 특히 작가는 상감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물감을 올리고 긁어내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독특한 질감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효과들은 작가의 의도된 통제와 만나 긴장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추상을 넘어 신체성과 물질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무의식에서 표출되는 자유로운 율동성과 즉흥적 에너지가 화면에 응축되어 있다.
김춘수는 30여 년간 울트라마린이라는 단일 색상과의 대화를 지속해왔다. 1990년대 초반 ‘수상한 혀’ 시리즈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손의 움직임으로 번역하는 시도였다. 붓 대신 손으로 직접 물감을 문지르는 행위는 단순한 기법적 실험을 넘어서는 의미로, 회화 도구와 신체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직접적으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수백, 수천 번의 반복된 손동작은 마치 묵묵히 기도를 올리는 듯한 명상적 행위가 되며, 이는 화면에 축적되어 깊이 있는 색면으로 구현된다. 특히 그의 최근 작업들은 더욱 강렬한 물질성과 촉각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회화의 평면성을 뛰어넘은 공간적 깊이감을 담아내고 있다.
김호정은 전통 도예의 맥락 위에서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는 작가로, ‘FLOW’ 시리즈로 대표되는 그녀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녀는 빗살무늬토기의 형태적 특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영국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인 도자 언어를 구축하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작가가 흙을 다루는 방식이다. 작가는 손으로 직접 흙을 빚고 주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효과들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도자기 표면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무늬와 형상들은 인위적 계산을 넘어선 본질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다.
아트프로젝트 씨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로 작업하는 세 작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예술적 행위가 어떻게 작품으로 맺어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기억들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행위를 넘어,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예술적 충동과 그것이 손을 통해 표출되는 순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쉽게 생각해보지 못한 손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아트프로젝트 씨오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 탐구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